한국사 제도 - 첩 " 아내와 첩, 아내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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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제도 - 첩 " 아내와 첩, 아내의 조건"

by 생각도령 2020. 6. 23.

'아내와 첩, 아내의 조건'

 



첩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아내가 죽은 후, 
혹은 아내가 살아있을 때에도
버젓이 집에 들어와 아내 역할을 했다. 

이덕무(李德懋, 1741 ~ 1793)는 첩을 이렇게 정의했다. ‘남편이 첩을 두는 것은 부인에게 고질병이 있어서 집안일을 하지 못하거나, 

혹 오래도록 아들이 없어 제사를 받들 수 없어서이다.’ 아내의 역할과 똑같았다. 
아내와 첩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도 달랐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시발(李時發, 1569 ~ 1626)이 비교적 명확한 기록을 남겼다. 그의 아내는 열아홉 살에 시집와 온갖 고생을 하다가 젊은 날 갑자기 죽었다. 

그는 최립 崔岦, 1539년[중종34] ∼ 1612 광해군 )
에게 묘지명을 부탁했다. 

최립이 아내에 대해 묻자 “부도를 제대로 행하면서 집안일을 질서 있게 다스린다는 것만은 대강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립, <간이집 簡易集> 제9권. ‘평안도 관찰사
이공의 처 정부인 민씨의 묘지명’). 

이어서 임진왜란 때 홀로 청주로 떠난 남편을 찾아
딸을 데리고 남행했다가 제천에서
자신을 만났던 일을 회고하면서 

 

 

 

 


“아내를 더욱 중히 여기면서 공대(恭待)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1년도 채 되기 전인 지금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공대’라는 말에 아내에 대한 마음가짐이
그대로 담겨 있다 첩에 대해선 어땠을까? 
그는 후사를 잇기 위해 첩을 들렸다. 
첩이 죽은 뒤에는 직접 제문을 썼다. 
‘자네의 행실을 보니, 

과연 총명하고 영특한 재주와 단정하고 정숙한 자질이 보통 규수에 비할 바가 아니었네. ...문사에 해박한 것, 거문고와 바둑에 능한 것, 자수나 서화에 뛰어난 것들은 그 밖의 일이라 할 수 있었지.
ㅡ 이시발

<제측실문>, ‘벽오유고 碧梧遺稿’ 권5 아내와 조금 다르다. 아내는 존경스러울 만큼 훌륭하게 처신한 존재로 기억한 반면, 첩에게는 글과 예능, 오락 등에서 재주를 보인 면을 추켜세운다. 

같은 여자이지만 마음가짐이 달라 보인다. ‘존경스러우면서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여성.’ 이시발이 다시 살아온다면 아마도 일부일처 시대의 아내의 자질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어려운 일이지만, 
남자에게 그런 
‘욕구’가 있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시발 신도비
벽오 이시발(1569~1626) 선생이 조선 선조·광해군·인조 등 세 임금을 섬기면서 북변의 여진인을 무마하여 백성의 생활안정과 지방민을 평온하게 하였던 공로를 찬양하기 위하여 효종 9년(1658)에 건립한 비석으로 비문은 송시열 선생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 선생이 썼으며,

이정영 선생이 새겼다.
이시발 선생은 선조 22년(1589)에 문과에 급제, 승문원에 등용된 후 임진왜란(1592) 및 이몽학의 난(1596) 때 큰 공을 세웠고,

이괄의 난(1624)을 평정하였으며 남한산성의 역사(役事)를 감독하다 타계하였다. 그의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익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2호
-소재지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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