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한국사 - 삼국시대 삼국 사람들끼리 말이 통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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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한국사 - 삼국시대 삼국 사람들끼리 말이 통하였을까?

by 생각도령 2020. 8. 28.

'우리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삼국 사람들끼리 말이 통하였을까

 

선화 공주님은(善化公主主隱, 선화공주주은)
남몰래 사랑을 나누고(他密只嫁良置古, 타밀지가량치고)
서동 방으로 밤에 몰래 안겨 간다.(薯童房乙夜矣卯乙抱遣去如, 서동방을야의묘을포견거여)
- 《삼국유사》

선화 공주는 진평왕(재위 579~632)의 딸인데 아름답기로 널리 이름이 나 누구나 혼인하고 싶어 하였다. 백제 땅에 살던 서동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서동은 신라의 서울로 들어가 이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재미있게 부르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서울에 가득 찼다.

공주의 행실이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자, 화가 난 왕은 공주를 대궐 밖 먼 곳으로 쫓아냈다. 이때 서동이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공주를 데리고 백제로 돌아갔는데, 그가 훗날 무왕이 되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동은 집안이 가난하였고 글을 배운 적이 없다. 만약 신라와 백제의 말이 달랐다면 이 이야기는 성립되기가 어렵다.

 



삼국의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이야기는 여러 기록에 나온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통역이 필요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삼국의 말이 대체로 비슷하였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였다. 한자를 빌린 것이기는 하지만, 고구려와 신라가 모두 이두를 널리 사용하였다.

아차산성
백제가 도읍지를 지키기 위하여 만든 산성으로, 장수왕이 이끈 고구려군과 싸우던 백제 왕이 이곳으로 끌려와 죽음을 맞았다. 475년부터 고구려 땅이었는데, 진흥왕 때 신라가 이곳을 점령하였다.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신라군과 싸우다가 죽은 곳도 이곳으로 짐작된다. 나라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었지만, 이 지역 사람들이 말이 안 통해 고생하였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 김춘추와 왕건의 차이

언어 말고도 세 나라 사람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세 나라를 묶어 삼한이라고 불렀으며, 당사자들도 중국이나 왜, 북방 민족과 이웃 나라를 구별하였다.

하지만 세 나라가 서로 동족이라고 생각하며 협력한 것은 아니다. 세 나라 사이에는 오히려 전쟁이 계속되어 서로서로 미워하고 침략의 대상으로 삼았다.

백제의 공격으로 위기에 빠졌던 김춘추는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똑같은 생각으로 당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당과의 대결을 앞둔 연개소문은 신라와 동맹하기를 거부하였다. 김춘추나 연개소문에게는 서로가 동족이고, 그래서 머지않아 통일하여야 할 상대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200년 뒤 후삼국의 주역들은 이들과 달랐다. 후백제의 왕 견훤은 왕건에게 글을 보내, "평양의 성문 위에 내 활을 걸고, 대동강 물을 내 말에게 먹이고 싶다."라며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신라가 경주에 9층탑을 쌓아 통일을 이루었듯이, 나는 개경에 7층탑을 쌓아 삼한을 통일하리라." 이러한 왕건의 통일 의지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김춘추와 왕건의 차이, 그것은 어디에서 왔을까? 바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한 나라로 지낸 세월의 결과가 아닐까?



무열왕릉

김춘추는 신라가 세 나라를 통합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때만 해도 민족을 배반하고 외세를 끌어들인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통일을 이룩함으로써 동족이라는 생각이 생겼고, 결국 김춘추는 동족을 배반하고 이민족을 끌어들였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처인성 전투
처인성은 흙성인 데다 그다지 높지 않아 작은 동산과 같았다. 이 성에서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을 격퇴, 고려는 역사에 남을 큰 승리를 거두었다.



영토 변천사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이 확립된 것은 조선 초기의 일로, 세종 때 4군과 6진의 개척이 이루어진 결과이다. 이후에도 함경도 사람들이 두만강 이북에 진출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였는데, 이곳이 곧 간도이다.

 



■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한 까닭

신라가 통일한 지 200여 년 만에 후삼국으로 분열되었듯이, 고려가 통일한 뒤 200여 년이 지났을 무렵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옛 신라의 중심지에서 신라 부흥 운동이 일어났고, 얼마 뒤에는 백제 부흥 운동도 일어나 큰 세력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곧 실패로 끝났다. 여러 해 동안 한 나라에서 생활하며 동족이라는 생각이 더 자라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분열을 꿈꾸는 사람들이 항상 나타난 이유는 그 사회 안에 있었다. 신라가 진골 귀족 중심의 폐쇄적 사회였던 것처럼 고려도 몇몇 가문, 몇몇 지역에서 정권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과 전쟁을 치르면서 동족이라는 생각이 크게 자라났다. 수십 년에 걸친 항쟁과 이어지는 시련 속에서 출신 지역을 넘는 단결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신라 출신이니 고구려 출신이니 하는 구별은 무의미해지고 온 나라 사람들이 하나라는 생각이 자라났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책의 맨 앞에 단군이 세운 (고)조선을 기록하고 민족의 시조로 여겼다. '삼한 70여 국이 모두 단군의 후예'라는 그의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였다. 고구려도 백제도 신라도 (고)조선의 뒤를 이은 나라라는 생각이 확산되었으니, 고려의 뒤를 이은 나라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조선'이 된 것이다.

 


고려 전기


조선 전기

■ 한민족(韓民族)이 탄생하기까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고려 사람, 조선 사람이라는 생각은 점차 커졌다. 일본의 침략에 맞서 임진왜란을 치르고, 두 차례에 걸쳐 청에 맞서 전쟁을 치르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커졌다. 반만년 역사를 함께한 민족은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역사를 발전시키고 독특한 문화를 누리며 살아왔다.

그러나 온전한 의미에서 하나의 민족은 완성되지 못하였다. 지역에 따른 차별이나 신분 차별은 여전하였고, 관리들이 민중을 수탈하는 것도 여전하였다. 심지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관리와 백성의 애국심이 같을 수 없고, 노비와 주인·상민과 양반의 애국심이 같을 수는 없었다. 모든 지역에서 똑같이 나라 사랑에 나서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였다.

'온 국민의 하나 되기'는 모든 차별이 폐지되고 민권이 확립되는 근대에 이르러 서서히 이루어졌다.

▣ 과거와 현재의 대화
21세기의 아침은 오랜 분열의 어둠을 걷는 남북 정상 회담과 함께 시작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정상 회담과 꾸준한 대화야말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첫걸음이 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분단! 그것은 오랜 통일의 시기에 비교하면 아주 짧고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평화적인 통일! 그것은 이제 먼 훗날의 꿈이 아니라, 머지않아 실현될 오늘의 현실이라는 믿음을 가져 보자.

01. 남북이 협력하여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하였을 때 새로운 나라 이름을 짓는다면 무엇으로 할까?

➀ 대한민국의 '대한'은 대한 제국 때 처음 쓰인 것으로 삼한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리고 지금 북한의 정식 이름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선'은 고조선과 이성계가 세운 조선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한쪽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이라서 쉽지 않다.

➁ 고려는 어떨까? 오늘날 북한 쪽에 수도를 둔 나라였다는 점에서 북한 쪽에서 좋아하는 이름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한때 '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이름과 함께 통일 방안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래서 남한의 거부감이 적지 않다.

➂ 코리아는 어떨까? 일찍이 축구와 탁구에서 남북 단일팀이 만들어졌을 때 사용된 이름이다. 오늘날 남북한이 함께 코리아(Korea)를 영문 국호에 쓴다는 점에서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남이 붙인 이름인 데다 우리말이 아니다.



02. 통일된 나라의 새로운 정치 중심지로는 어디가 좋을까? 그 후보지들을 살펴보자.



➀ 평양
만주를 호령하며 통일 중국에 맞서 당당하게 싸우던 고구려의 수도입니다. 고조선을 세운 단군의 무덤도 여기에 있지요.

➁ 개경
세계를 향하여 열린 문, 벽란도가 있는 곳. 코리아의 이름을 만방에 드날린 고려의 수도입니다. 민족을 다시 통일한 것을 기리며 새 수도를 찾는다면, 고려의 옛 수도가 가장 어울리겠지요.

➂ 한성
한반도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어디로든 갈 수 있지요. 넓은 땅을 차지하고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이곳, 과거와 현재가 함께 살아 숨 쉬는 이곳이 가장 적임지이겠지요.

➃ 사비성
너른 들판과 굽이치는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 문화 수준이 높고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가 되려면 이곳,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가 가장 어울리지요.

➄ 금성
오늘날 우리 민족이 있게 한 삼국 통일의 현장이지요. 이곳에 새 수도를 정하면 아마 1,000년 동안은 무궁하게 발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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